정치,대의,권력, 이런 것들.. 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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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로 굉장히 많은 일들과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갈 시간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고, 힘이 빠져서 탈진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가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는 템포보다 훨씬 빠르게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힘이 빠지는 이유는 그것이 물리적이고 절대적으로 나의 몸을 혹사시켜서가 전혀 아니라, 오히려 망설이고 고민하는 시간, 우물쭈물하고 어쩔 줄 모르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이 대부분 사람들과의 관계로 얽혀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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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적어도 정치 냉소자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맥락으로 이명박이 대통령인 시절과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시절,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서울과 박원순이 서울시장으로 있는 서울,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선택과 판단이 우리 삶 곳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은 자신의 책 "닥치고 정치"를 광고하며 "우리 삶에 스트레스를 주는 곳에 정치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 참여하는 행위는 내 삶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행위"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나는 그 멘트를 지극히 환상을 자극하는 멘트라고 판단하고 있다. 
  표현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실제로 정치는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정치적 행위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삶을 바꾸는(우리 삶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무언가가 맞다. 이것은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정치"를 해석하는 범위와 그 행위의 구체적 내용이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 그래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 이것을 정치의 모든 것으로 국한시킬 때, "정치적 행위가 내 삶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행위"라는 문제가 전혀 없는 이 명제는 매우 문제적 명제가 되어버린다. 
  특히 문제는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정치의 모든 것으로 간주될 때 생겨난다. 흔히 정치는 "권력을 분배하는 행위"로 정의되고 있다. 수천년간 내려온 정치학의 역사 속에서 보편적으로 내려진 이 정의가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정치는 "권력관계에 얽힌 모든 행위"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정치라는 행위를 정의하는 개념의 방점은 "권력"에 찍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찍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틀린 말이 아니고, 게다가 그렇게 이루어졌던 긍정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들에 대해서 부정하고 싶은 마음 역시 없다. 하지만 그 믿음이 삭제해버린 수많은 이야기들과 삶의 모습 역시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권력을 갖고 만든 변화들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충분히 경험해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권력을 갖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너무도 매력적이고, 환상적이어서, 여기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우선순위가 "선 권력, 후 혁신"(물론 이렇게 간단하게 도식화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이 되는 순간, 그 안에는 "선택된 대의"만 남고 그 "대의"는 많은 목소리와 고민, 성찰의 내용들을 삭제하기 시작한다. 혁신의 명분을 갖고 권력을 쟁취하려는 의지는 "대의"를 중심으로 과정을 편집한다. 대의를 흠집내지 않는 정도의 비민주성, 폭력성은 용인할 수 있게 된다. 세종이었다면 "대의,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이야기 했겠지. 
  나는 한미FTA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히 우려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미FTA를 반대하고 있지만, 집회의 현장에서 김선동 의원을 영웅시 하는 분위기 역시 참을 수가 없다. 윤봉길 의사니, 안중근 의사니 운운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너무 이상하다. 권력을 쟁취하는 것을 중심으로 편집된 정치의 과정이 가져오는 매우 위험한 상황의 모범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령 권력을 쟁취했다한들, 뿌리(문화, 관계)없는 대의가 만들어 내는 혁신이 얼마나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까? 결국 우리 삶은 살아가는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관계들과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지는 것이지, 마치 축구 경기 하듯이 이리 저리 응원의 물결 속에서 획기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선거와 집회, 이러한 정치적 축제와 해방의 공간에서 느낀 환희를 우리 삶으로 이어가는 것은 분명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필요로 한다. 아마 그것은 "관계"에 더욱 집중하는 연습, 삶의 작은 관계와 삭제되었던 일상 속 권력관계의 불편함을 풀어가는 것을 정치의 언어로 재구성할 때, 가능한 도전이 될 것 같다. 
  "좋은게 좋은거야" 하기에는 위험하다. 그 환상(권력을 잡는 것이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는)이 삭제하게 될 삶의 현장과 관계, 그 작은 이야기들을 생각할 때, 심히 위험하다. 
  새로운 실험을 할 때가 아닌가? 그렇다면, 변화와 권력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고, 시작하는 한 사람으로 각자가 서는 것이 어떨까? 아마 미래의 공적 권력은 삶의 현장으로부터, 작고 소중한 관계 하나하나로부터 확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은 미래라면, 그것은 아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폭력의 미래,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 불편한 미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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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청년과 정치, 청년 세대의 투표참여, 등등에 대한 화두도 많이 던져지고 있고, 실제로 많은 시도들이 있는데(아마 내년은 정말 뜨거울 정도로 청년과 정치를 엮으려는 시도들이 들끓겠지!), 그 안에는 "지역"이라는 화두가 없다. 이것은 청년들의 욕망(서울에서 살고 싶다, 도시에서 살고 싶다.)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후반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던 청년담론이 한걸음 더 못나가는 이유는 명백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사실은 알고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정치는 1차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욕망을 자극해서, 그것을 묶는 행위로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지만, 그 욕망을 성찰하게 하는 것 역시 정치의 역할일텐데 그것이 쉽지 않다. 위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정치의 모든 목표가 되었을 때, 성찰은 가당치도 않은 소리가 된다. 단적으로 대학 총학생회 선거가 이른바 "복지공약"으로 정책자료집을 가득 구성하게된 것이 이 같은 현상의 구체적 사례일 것이다. 
  2012년에 등장해야 될 청년들의 정치운동은 욕망을 자극하는 정치에서 욕망을 고백하는 정치로의 도전이 아닐까? 물론 청년들의 정치적 요구를 모아내고, 그것을 정책으로 투입시키는 보편적인 정치운동도 중요하지만, 새롭고 작은 시도들이 드러나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그것이 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87년 체제를 전복시키는 청년들의 도전인 것이고, 청년 세대가 가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실험을 조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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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ξ 2011/12/17 13:34 # 답글

    논술공부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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